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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그렇다면 당시 등장한 이들은 누구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1968년5월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또한 그들로 인하여 세계는 어떻게 반응하였으며, 그 사건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본고를 통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68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개혁운동’이었던 ‘프라하의 봄’이 좌절되자, 그동안 60년대 체코의 개혁운동과 ‘프라하의 봄’을 주도하던 밀란 쿤데라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그는 공산당에서 제명됐고, 교수직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창작과 출판의 자유를 잃어버렸다 체코인들의 정체
혁명으로 통치했던 인물이다. 모택동이 살았던 1893~1976년이라는 시기에 중국이 구체제에서 벗어나 신 중국이 되는 발판이 마련되었는데 그는 조국의 재창조에 큰 역할을 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1949)의 탄생에 주역을 담당했다. 모택동에 대해서는 후에 평가가 엇갈리는데 그 평가야 어찌되었든 아직도
1968년5월, 파리 학생들의 카르체 라탄에서의 바리케이드 점거 투쟁을 계기로 프랑스 전국을 휩쓴 1,000만 노동자의 공장점거 총 파업을 보통 ‘5월혁명’이라 부른다. 지난날의 세대 간의 갈등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반항으로 상정되었으나 1960년대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영역에 걸쳐 기성세
세계혁명으로서 68년-실제로는 60년대 초에 시작되어 10여년간 일어난 혁명-은 전 체제적인 규모의 대항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세계 혁명에 가담한 각 나라의 개별 운동들은 각 나라가 처한 환경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또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 아니면 이 두가지 모두에 대
68년의 사건들과 어떻게 비슷한지, 성과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다시 차이점과 촛불시위의 한계를 살펴본다.
Ⅱ. 68혁명의 배경과 전개
1. 5월사건의 뿌리들
프랑스의 산업은 유럽의 중심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야 프랑스는 영국이나 독일에 대등하게 발전했다. 제조산업의 양이 극적으
68년5월 프랑스 파리 근교의 작은 대학인 낭떼르 분교 학생들의 시위에서 촉발되어 노동자계급의 다양한 부문이 참여한 전국적 운동으로, 그리고 십여 년 이상 지속된 전 유럽적 운동으로, 나아가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등에까지 파급된 전 지구적 운동으로 발전해 나간 68혁명에 대해 조
Ⅰ. 서론
1968년 프랑스 5월 운동의 두 축은 학생과 노동자이다. 각 주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므로 어떤 세력을 중심에 놓고 5월 운동을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전체적 해석 역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5월혁명은 프랑스 드골 정부의 실정과 사회의 모순으로 인한 저항운동과
Ⅰ. 개요
프랑스혁명은 전형적인 시민혁명(bourgeois revolution)으로 그 근본원인은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 즉 혁명전의 프랑스 사회인 구체제의 모순에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절정기에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많은 체제 유지비가 필요한 때였다. 게다가 종교적으로 극도의 불평등이 상
4) 68혁명
: 1968년 3월, 프랑스 파리대학 낭테르 분교에서 기숙사에 대한 엄격한 성별분리에 저항하며 ‘양성평등’과 ‘사랑할 권리’의 보장을 외치며 학교를 점거한 사건이다. 일부 파리대학 학생들은 베트남전에 항의해 미국계 상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점거하고 5월부터는, 프랑스 대학생들이